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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디베어의 깊은 뜻을 아시나요? | 2007.08.30 | 8324 |
아이들은 흔히 테디베어를 단순히 귀엽고 예쁜 곰 인형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한편 어른들은 이런 테디베어를 사달라고 떼쓰는 아이들의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지나칠 때가 많다. 사실 어른들에게 테디베어는 다른 인형과 별 차이가 없기 때문에 이것을 사주는 게 선뜻 마음에 내키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에게 테디베어는 그저 인형이니까 좋아하고 가지고 싶은 욕구가 있을 것이다. 비록 테디베어가 동심(童心)을 파고드는 하나의 상술일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테디베어가 탄생하게 된 배경을 알고 난 후로 기성인으로 가끔 테디베어에 대하여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테디베어의 테디(Teddy)는 미국의 26대 대통령인 테오도어 루스벨트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다. 어느 날 루스벨트 대통령이 사냥휴가를 갔을 때 어느 보좌관이 대통령을 기쁘게 하기 위해 어리고 병든 약한 곰을 잡아서 쉽게 사냥할 수 있도록 나무에 묶어 두었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안 대통령은 그 곰을 당장 풀어줄 것을 명령했다. 이 유명한 일화로 인하여 테디베어는 지구촌의 모든 인종과 국경을 초월해 가장 인기 있는 인형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우리는 어린 자녀들과 함께 테디베어를 그냥 인형으로만 여기고 쳐다보며 또 만져보지만 이 인형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서 이렇듯 누구나 가슴 저미어 오는 감동의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바로 정정당당한 행동, 원칙이 바로 선 바른 사회를 갈망하는 깊은 뜻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 우리사회는 새로운 시대로의 도약을 위한 전환기적 단계에 와 있다. 과거에 전례가 없던 사회 전반의 총체적 패러다임으로의 변화와 혁신이 몰아치고 있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변화의 흐름에 가장 민감한 곳이 바로 경제 운영의 주체인 기업이다. 지구촌의 벽이 허물어진 21세기를 맞이하면서 무한경쟁의 새로운 도전 앞에 자의든 타의든 지속적인 변화와 혁신을 창조하는 것만이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절대적 가치로 여겨지는 만큼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되었다. 작금의 변화 속에서 기업이 진정 고민해야 할 것이 ‘누구를 위하여, 누구와 함께, 어떠한 틀과 방법으로 경영을 할 것인가’일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새로운 기업경영 패러다임이 바로 국민과 함께하는, 상생(相生)의 기업경영으로의 변화일 것이다. 왜냐면 기업이 국민에게 신뢰받지 못하면 그 몫은 고스란히 그 기업에게 돌아가고 더 이상 생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이 저마다 내세우는 것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윤리경영’이요, 국민들에게 신뢰받는 기업으로 거듭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채택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기업의 윤리경영 실천은 국민과 함께하는 기업, 사회적 책임(CSR :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다하는 것이며, 기업이 이윤 극대화의 자본 축적 측면에서 사회적 측면으로의 환원적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기업이 윤리경영을 통하여 국민에게 신뢰를 받고 존경받는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절대 간과(看過)해서는 안 될 중요한 기본적 요소는 바로 ‘원칙’이라는 기업철학(기업문화)이며, 바로 원칙을 우선시하는 기업 윤리가 곳곳에 깊숙이 자리매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기업은 사회적 책임과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바로 절차에 있어 원칙 그리고 법을 무시하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시대착오적 기업문화이다. 그 중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이 기업이 장애인고용의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라는 기본적 원칙, 페어플레이를 경시하는 기업의 도덕적 해이이다.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표방하면서 장애인 복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전 근대적인 접근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일반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계층이 바로 장애인이며, 이들은 시민사회의 한 일원으로 자리 잡고자 무한히 꿈꾸고 있다. 그것은 오로지 직업을 통해서 실현된다. 일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다를 수가 없다. 그래서 기업의 장애인고용의무에 대한 원칙, 사회적 책임의 역할이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장애인 복지에 있어 일자리 창출은 궁극적인 생산적 복지(Welfare to work)요, 이것은 궁극적으로 기업의 신뢰성을 가져다주고,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은 아직도 장애인하면 소외계층으로, 기부의 대상으로, 금전적 보상을 전제로 한 고용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장애인은 금전적 지원금을 얻기 위해 고용하는 수단적 존재가 될 수 없다. 장애인 개개인은 고용에 있어 당당한 권리의 주체이지 금전적 보상을 전제로 한 고용의 객체가 결코 아니다. 장애인고용정책에 대해 상담을 하다보면 “장애인을 고용하면 무슨 지원금 같은 것 나옵니까?”라는 질문을 자주 받게 된다. 곱씹어 생각해보면 안타까운 말이다. 장애인은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경험되지 않는 편견에 입각해 고용에 있어 장애인이 주체이든 객체이든 상관없이 그저 보상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우리 기업 문화의 현 주소이다. 분명한 것은 장애인을 고용하는 것이 먼저이고, 지원금은 그 다음이라는 점이다. 이것이 가장 근본적으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고 나아가 비장애인·장애인 구별 없이 일할 수 있는 원칙이 익어가는 사회적 분위기를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인 셈이다. 즉 매사 페어플레이 정신을 실현시키기 위해 장애인이 왜 일자리를 필요한가를 기업이 스스로 고민하고, 그들을 위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가는 사회적 책임의 선택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세계의 굴지 기업은 이미 다양성 인력관리(HR)를 통해 인종차별 없이 장애, 비장애인의 차별 없이 인력을 채용하고 있다. 진정한 인간중심의 가치실현을 위해서 장애인·비장애인 모두 차별 없는 최소한의 기준과 동일한 잣대로 능력과 정도에 맞게 처우 받는 선진적이고 지속가능한 윤리경영을 기업이 솔선수범할 때이다. “잘못된 이유로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테디베어 원칙에 담긴 루스벨트의 이 정치적 메시지는 우리에게 큰 교훈으로 될 수 있다. 우리나라 경영 CEO들이 솔선하여 원칙이 우선시되는 진정한 윤리경영을 통해 차별이 없이 차이를 인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진정으로 국민에게 존경받는 사회적 기업으로 거듭나길 진실로 기대해본다. *이 글은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제주지사 오창식 고용지원팀장에 본지에 보내온 글입니다. 기고/오창식 (ryukr@kepad.or.kr) [Ablenews 2007-08-28] |